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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15. 03:15


영화를 볼 때 나는, 가급적이면 보게 될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적게' 들고 극장에 가기 위해 노력한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보게 된 <비거 스플래쉬>의 경우, 겨우 제목 정도만 인지한 상태였다. 영화관에 들어서고 나서야, 아 틸다 스윈튼이 나오는 영화구나, 아 저 여자애가 그레이의 50가지 옘병...이 아니고 그림자에 나왔던 애구나, 했을 정도.

이는 매사 기대하는 바가 크지 않아 매사 크게 실망할 일도 없는 나의 성격과도 관계되어 있는데, 정말 돈과 시간이 남아 돌아 필름에 장난질하는 영화가 아니고서는 어지간한 작품은 웬만하면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물론 나름의 취향이라는 것이 꽤 엄격하고 고고한 모양새로 형성되어 있어 '어지간'하기가 쉽지 않기는 하지만.)

무튼 이렇게 아무 사전 정보 없이 보게 된 영화라지만 (=그다지 큰 기대가 없었다지만) 러닝타임 124분 동안 단 한 순간도 지루하게 느껴진 순간이 없었던, 집중력의 한계치가 정확히 90분인 나의 기준으로는 굉장히 재미있었던 영화다.


캐릭터들에 대한 설명은 약간 플랫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순하였으니, 단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게 한 것은 결국 네 인물이 얽혀 있던 상황과 이야기의 구조였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이 영화에 대해 알고 있던 정보는 제목 정도라고 언급했는데, 다분히 '물보라'(?)가 연상되는 제목 덕분에 나는 이 영화가 굉장히 푸르고 역동적이고 눈부신 영화일 것이라는 편견을 아주 조금 가지고 있긴 했다.

실제로 이 영화는 정말 눈부시고 푸른 영상미를 재현하고 있었지만, 역동적임을 표현해낸 것은 영상미가 아니라 네 사람을 충동질했던 서로 간의 눈빛과 얽히고 얽힌 과거, 그리고 마리안의 아픈 성대를 뚫고 나오지 못했던 여러 가지 모양의 진심이었다.


딱히 관념적인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지만, 배우들의 눈빛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말은 곧, 이 영화에 출연한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는 말이다. 틸다 스윈튼이야 말할 것도 없고,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짜증나는 부녀다'라고 생각하게 만든 랄프 파인즈, 다코타 존슨의 연기도 딱 필요한 만큼 좋았다.


사는 동안 언젠가 한 번은 원하지 않는 갑작스러운 일이 찾아오게 된다. 하지만 곰곰히 따져 보면 아주 쌩뚱 맞은 곳에서 찾아오는 일은 아닐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과거에 내가 뿌려둔 씨앗에서 맺히게 되는 일이겠지.

삶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 아닐까.